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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규

극히 일부의 사건이겠지만 오래전 부터 있었던 이야기여서

검색해서 편집을 해서 올려봅니다.

 

●우리나라 최초의 가수 윤심덕은 <사의 찬미>를 불렀다가 그만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.

 

●60년대 말,<산장의 여인>을 부른 가수 권혜경은 가사 내용처럼 자궁과 위장에 암에 걸렸고 요양을 하며 재생의 길을 걷게 되었다.

그녀는 산장에 집을 짓고 수도승처럼 쓸쓸히 살아가고 있다 한다.

 

●<수덕사의 여승>을 부른 가수 송춘희는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불교 포교사로 일하고 있다.


●이난영은<목포의 눈물>을 부르고 슬픈 인생을 살다가 가슴앓이 병으로49세에 숨졌다.
 
 ●가수 양미란은<흑점>이란 노래를 남기고 골수 암으로 숨졌다.


●가수 박경애씨는 향년 50세에 폐암으로 사망했다.

그녀가 부른 노래 <곡예사의 첫사랑>의 가사에 죽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있다.

"울어봐도 소용없고 후회해도 소용없다"
 
●<머무는 곳 그 어딜지 몰라도>를 부른 국제 가요제 전문 가수 박경희도 그 노래가사의 내용처럼 향년 53세에 패혈증과 신장질환으로 별세했다.
 
 ●장덕은<예정된 시간을 위하여>를 부르고 사망했다.
  
●남인수는<눈감아드리리>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다.

그는 41세의 한창의 나이에 '눈감아 드리오니'의 노랫말처럼 일찍 눈을 감고 말았다.

 

 ●<0시의 이별>을 부른 가수 배호는 0시에 세상을 떠났다.

<돌아가는 삼각지>를 부른 그는 젊은 날에 영영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버렸다.

그는 <마지막 잎새>를 부르면서 세상을 떠났다.


●<낙엽따라 가버린 사랑>을 불렀던 가수 차중락은 29세의 젊은 나이에 낙엽처럼 떨어져 저 세상에 가버렸다.
 
●「간다간다 나는 간다 너를 두고 나는 간다.」<이름 모를 소녀>를 열창하던 선망의 젊은 가수 김정호는 20대 중반에 암으로 요절,

노래 가사처럼 진짜로 가 버렸다.

 

●<이별의 종착역><떠나가 버렸네><내 사랑 내 곁에>를 불렸던  가수 김현식도 역시 우리 주위를 영영 떠나가 버렸다.
 
 ●<우울한 편지>를 부른 가수 유재하는 교통사고로 사망했고,

 

●하수영은<아내에게 바치는 노래>를 부르고 세상을 떠났다.
 
●가수 김광석은<서른 즈음에>를 부르고 나서 바로 그 즈음에 세상을 떠났다.
 

●<이별>을 불렀던 대형 가수 패티김은 작가 길옥윤과 이별했으며,

 

●고려대 법대 출신의 가수 김상희는 <멀리 있어도>를 부르면서 남편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어

몇 년간 떨어져 있게 되었다고 한다.

 

●가수 조미미는 35세까지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

<바다가 육지라면>이 히트되면서 재일 교포가 바다를 건너와 결혼이 성사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.
 
●오랫동안 노처녀로 지내다가<만남>을 부른 노사연은 행복한 결혼을 하게 되었다.
 
●<세상은 요지경> 이라는 노래를 불렀던 신신애는 사기를 당해 모든 것을 잃었다.

노랫말 그대로, "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, 짜가가 판을 친다"였던 것이다.


●<쨍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>을 불렸던 가수 송대관은 한동안 주춤했다가 어느 날 다시 가수로 복귀하여 인기를 점점 얻더니,

지금은 노랫말대로 진짜 쨍하고 해뜨는 날이 오게 된 것이다.

가수 생활10년이 넘도록 빛을 보지 못했다가 지금은 쨍하고 빛을 보게 되었다.

송대관은 그의 첫 히트곡이<세월이 약이겠지요>였다. 이 노래 제목처럼 진짜로 세월이 약이 된것이다.